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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를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예전 직장에서 일할 때의 일을 많이 생각했다. 희노애락의 새로운 경지를 맛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즐거웠던 일도 힘들었던 일도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더이상 사회에서 “아이”가 아닌 “어른”임을 확실히 자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영업직이라 수 많은 의사들을 만나야 했고, 처음 시작할 때는 겁도 많이 났다. 그런데 역시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은 지 어느새 적응해나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5년 반 넘게 영업직으로 일하면서 정말 많은 의사들을 만났는데, 정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셨다. 비록 의사들에게 을의 입장이지만 그들이 정말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 많은 사람들이 배부른 자들의 허영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들의 데모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의이든 타의이든 정말 많은 시간을 진료, 공부에 평생 할애하고 있었다. 물론 아닌 의사들도 분명 있다. 세상에 100% 선한 사람들로만 이뤄진 그룹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한창 클리닉을 방문하던 시절 모 내과에 영업을 하러 들렀던 적이 있었다. 매우 사람좋아보이는 의사였고 내게 친절했으며, 간호사들과의 관계도 매우 좋아보였다. 기회가 닿아 다같이 회식하는 자리에 초대받았고 같이 즐겁게 식사를 하며 헤어지기 직전 간호사들이 다같이 화장실에 같다. (여자들은 한꺼번에 화장실에 잘 간다). 그래서 그 의사와 나는 식당밖에서 그들을 기다리며 약간의 잡담을 나눴는데, 어느 순간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가슴이 참 크시네요” “네?” ” 가슴이 참 크시다구요”
나는 절대 글래머 스타일이 아닌데, 체격이 크고 그때 약간 통통했었기에 풍만하게 보이곤 했었다. 실제와는 전혀 다르게. (친구들이 나보고 복받았다며, 그렇게 속일 수 있는 것도 복이라며 ㅋ )
그 의사는 이미 자녀가 두 명 있었고, 부인이 만삭이라고 했다. 곧 셋째가 태어날 의사인데 그따위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다. 나는 그 때 정말 정말 초 신입이었기에 머리속이 하얗게 되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잘못 대답하면 큰일날 것 같다는 생각에 “아, 네…” 라고 하고 말았다. 때마침 그 때 간호사들이 왔고 우리들은 각자 흩어졌다.
그 날은 술김에 그랬겠지 싶어서 다시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벌건 대낮에 그 인간은 또다시 그 성희롱 발언을 하는 거다. 와…. 이 놈 발정났구나 싶어서 더이상 방문하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지점장님께 전화하여 사정을 설명한 후, 더 이상 방문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동안 지난 뒤에 전화도 왔었지만 안간다고 말했다. 그 것이 몇년간 의사를 만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은 성희롱이었다.
가끔 병원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성폭행 기사를 보면 저 병원에 대해서도 알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을, 그리고 이는 이미 몇년 전이었고… 그냥 조용히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겪었던 병원에서의 성희롱은, 다른 지방의 모 정형외과에 환자로 갔을 때 발생했다. 그 정형외과엔 몇 년 간격으로 두 번의 진찰을 받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의사가 아니라 방사선사가 문제였다. 처음 그 병원에 갔을 때 무슨 병명으로 갔었는지 잊었으나, 그 방사선사가 조금 불쾌하다 생각했다. 자세를 말로 해주면 환자가 알아서 취하고, 엑스레이만 찍으면 되는데 너무 직접 해주는 느낌. 그러나 내가 예민했을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그 뒤에는 잊고 있었다.
아.. 그러나 2012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다시 병원에 갈 일이 생겼고, 그 병원에 척추 진단을 받으러 갔었다. 요추가 특히 아팠더랬다. 또다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해서, 엑스레이 침대(?)에 누웠는데 얘가 등을 쓰다듬고 심지어 내 엉치 끝 뼈까지 만지는 거다( 대놓고 쓰다듬었다기 보다는 진찰하는 척 쓰다듬은..). 간단히 말해서 그 사람이 내 엉덩이 골 사이 바로 위의 뼈까지 만졌다고 보면 된다. 순간 정말 매우 놀랐고, 불쾌했다.
“여기가 아프다는 거죠?” “….!!!!!!!!!”
그 사람이 거기를 만질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워낙 순식간이라 너 뭐하는 짓이냐고 말할 타이밍도 놓쳤다. 애가 자세비스무리하 취하라 했었는데, “니 자세가 이상하여 내가 교정해줬다. 그리고 매우 잠깐 교정만 해준거다, 아픈 곳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라고 하면 내가 할 말이 없는 상황… 그 때 정말 확신했다. 이 놈은 엑스레이 사진 교정을 핑계로 수도 없이 성희롱을 해왔겠구나.
그 뒤론 그 병원에 안갔는데, 아직도 그 병원에는 환자가 물밀듯이 밀려든다. 그 의사가 신뢰를 받는 듯 하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그 방사선사는 아직도 여자, 아니 어쩌면 젊은 여자만 열심히 만져대고 있겠지. 참고로 다른 정형외과들도 몇 번 방문하여 치료받은 적 있는데, 방사선사가 정말 멀찍이 떨어져서 취해야할 자세를 말로만 지시했다. 그동안 찍었언 모든 엑스레이는 정말 산뜻하게 끝났다.

성희롱의 기준은 매우 애매모호하여 본인이 수치심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가 아니라고 말하면 피해자만 바보 되는 상황이 십중 팔구.. 내 경험에 비춰봐도 매우 은밀하여, 정말 말하기 힘들다. 어디 마땅히 말할 곳도 없다. 그런데 그 은밀한 피해자가 여러 명이라면 그건 가해자의 잘못이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정말.. 사회에서 약자이고 싶지 않은데, 약자로 몰리는 상황이 싫다. 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면, 내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비극이 끝나는 날이 올까…?

Posted: April 23, 2014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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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감정이 너무 심하게 동요되어 매일같이 울었다. 사망자들이 죽어가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에 대한 안타까움, 가족을 잃은 그들의 아픔, 아무리 파헤쳐도 끊임이 없는 비리, 공감능력 떨어지는 소시오패스 미친 정치인과 미친 기자 및 미친 일반인들의 작태, 고질적인 안전불감증 및 정부의 무능함,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구조상황, 부실한 대처, 상황설명 및 피해자 가족에 대한 지원 등이 명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만 하는 한심한 정부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날 화나게 만들어 요 며칠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문을 읽지 않고 뉴스를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다가도 어느새 신문을 읽고 있다. 더이상의 희망이 없을 것 같지만 0.01%희망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화내고 울고 짜증내면서도 뉴스를 읽는다. 독일에 있는 내가 이런데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슬플까… 대한민국의 집단우울증. 내가 이런 비리로 가득차고 엉망진창 부실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너무 부끄럽고, 이런 시스템에서 살아갈 상상만해도 덜컥 겁이 난다.

까도 까도 새로운 속살이 드러나는 양파처럼 까도까도 비리가 나오는 대한민국. 내가 태어난, 내가 자라난, 내 나라가 너무 싫어진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가 아니고 “비리공화국 대한민국에도 봄운 오는가” 인 것 같다. 정말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썩어빠진 나라에서….

세월호 유가족 울리는 논란의 말말말 “국민이 미개하니까…시체장사 한두 번 당해봤나” [인포그래픽] http://www.visualdive.co.kr/세월호-유가족-울리는-논란의-말말말-국민이-미개/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503871859724495&substory_index=0&id=38913345786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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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돌아오기 직전에 인사동에 가서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선물 고르는 겸 오랜만에 인사동을 한바퀴 돌았다. 도중에 잠시 처음 본 한옥에 들어갔는데 (인사동 information center였었던 것 같다) 그 건물안에 외국인들이 한복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마침 어떤 커플이 사진찍고 있길래 양해를 구하고 찰칵! 서울에 외국인 친구가 있으면 꼭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인 것 같다. 그리고 다음에 쌈짓길…. 인사동은 참… 왜이리 모든게 다 비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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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전 사진들 : http://www.storehouse.co/stories/g66m-insa-dong

내가 처음 서울갔을 때 느낀 그대로의 웹툰. 🙂
‘강변살다’ 라는 웹툰인데, 정말 공감가는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느낌이다.
부산이나 다른 지방은 젊은이들이 점점 사라져 죽어가는 상황인데, 안그래도 사람 많은 서울에 자꾸 사람들이 몰리니 더 살기가 팍팍해질 수 밖에 없지 싶다.
내가 독일에 왔던 이유 중 하나가 부산 아니면 서울을 선택하느니, 차라리 다른 나라를 선택해보련다는 거였다. 어딜 가든 낯설기는 마찬가지니까. 다행히 여기가 내 마음에 들었지만, 더러워서 독일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독일이 그래도 좋은 점은, 우리나라처럼 서울에만 사람들이 몰리는 게 아니라 분산되어 있다는 거. 아무리 대도시라 해도 우리나라 서울처럼 큰 곳은 없다. 고루고루 분포해서 발전되어 간다고나 할까. 서울만 살고 지방은 죽어가는 한국에 살다가 여기오니 이런 점이 너무 부럽다.
서울만 사람사는 데인줄 알고, 지방은 무시하는 서울 사람들을 많이 뵜다. 우물안 개구리같은 그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안타깝고, 방문하거나 살 이유를 느낄 수 없어져만 가는 지방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

웹툰출처: 강변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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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딸을 학대한 끝에 사망케 한 울산 계모 사건. 요즘 한국사회에 이런 흉흉한 사건이 많아서 참 우울하다. 자식있는 사람은 재혼도 못할 판이다.
뉴스를 보는데 울분에 찬 댓글을 하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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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런 년을 변호하냐고. 분명 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할 듯 하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년을 왜 변호해주는 가? 이것은 변호사의 윤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명깊게 본 웹툰 ” 동네변호사 조들호”의 내용을 좀 캡쳐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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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라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변호사의 도덕. 그들이라고 왜 살인자를 변호하고 싶을까.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싫어도 지켜야할 사회질서가 있다.
악인이라는 것을 누가 규정할 것이며, 이 세상에 너는 악인이다! 라고 100%확신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선과 악의 기준은 매우 모호하고 드러나는 진실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흑과 백이 확실치 않고, 도덕을 판단할 잣대와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이 전부 다른 이 회색의 세상에서 딱 잘라서 무언가를 규정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100퍼센트 잘못한 사람들만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견의 충돌, 불가피하게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할 때도 재판을 받는데 그럼 이때는 누가 잘못한 것일까?
울산계모사건은 분명 누가 봐도 잘못되었고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녀가 악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은 변호사의 일이 아니라, 판사의 일이다. 변호사는 변호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의뢰인을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기 때문에 변호했어야만 한다. 그나마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받게 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고, 우리나라가 사형폐지국 상태에서 언제 다시 사형을 개시할 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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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떤 웹툰에서 캡쳐했는데, 무슨 웹툰인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아마 닥터 프로스트 이런 만화가 아니었나 싶은데…

부모들은 자식이 본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 말썽 안부리고 말 잘듣고 공부잘하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지길 바란다. 딱히 성격이 모나지 않고 부모님에 거슬리기 싫은 내성적인 성격의 혹은 남들과 다른 조금 독특한 세계를 가진 아이들은 특별히 빗나가지 않고 묵묵히 공부하고 평범하게 지낸다. (독특한 세계를 가졌으나 내향적인 아이가 여기 해당)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곧잘 하고, 딱히 학교생활에 큰 불만을 보이거나 이야기하지 않으며, 평소에 사고치는 일이 전혀 없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줄 안다. 물론 아이가 잘 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들같은 경우는 학교 생활이 힘들어도 그냥 받아들인 후 몇몇 친구들과 딱히 깊지는 않은 관계를 맺고 공부나 하면서 외로운 학교 생활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내성적이고 수줍은 학생들은 부모들이나 교사들에게 다루기 쉬운 학생일 지 모르나, 또래 친구들에겐 딱히 개성도 없고 재미도 없는 그런 아이들이다. 친구가 없어도, 조금은 속상하고 힘들어도 말없이 있는듯 없는듯 공기같은 아이들과는 같이 놀고싶어하지 않는다. 끼리끼리 만나기도 하지만, 그런 친구를 찾아내는 행운조차 못갖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는 아이들밖에 없어서 순수할 것 같지만, 실은 원초적 본능으로 가득한 밀림의 세계이다. 순수하고 순진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더 잔인한 이들이 바로 아이들인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나는 겉으로 그냥 멀쩡하고 공부도 곧잘 하고 집에서 딱히 문제가 없었으며 그럭저럭 친구도 있는 그런 아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인가? 다른 친구들은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 놀거나 서로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나는 집에서 두꺼운 세계명작전집 중 제인에어를 들고 와 혼자 책상에 앉아 그 책을 읽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생활 어느 정도는 그래도 가까웠던 친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갈라지며 그나마도 뿔뿔이 흩어졌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나의 그 외로움은 여전했고, 우리는 분명 같은 나이 같은 동급생인데도 친구들에게 잘보이려 전전긍긍했다. 수업 시간에 “내게 만약 1억이 있다면 무엇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 각자 선택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1억으로 우정을 사겠노라고 말했다. 그 수업 시간에 거울을 보고 본인의 이름을 불러보는 시간도 가졌었는데, 내 차례가 되어 내가 직접 거울을 응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xx야”하고 내이름을 불렀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이름을 불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었던건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나는 어딘가 우울하고 차갑기도 한 그런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요즘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는데, 그 시절의 나는 이미 그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내가 지금 자살하면 누가 슬퍼해줄까? 우리 가족은 슬퍼하겠지. 이렇게 힘든 세상 앞으로 살아서 뭐하나… 하며 하루하루 슬프고 외로운 마음으로 살았다.
내 삶의 분기점은 고3때였다. 그 때는 모두가 저녁 늦게까지 남아서 야자를 했고, 서로 같은 스트레스 아래 이리저리 부대끼며 생활했다. 매일 점심 저녁을 같이 먹으며, 특히 주말에도 나오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 때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친구가 많이 생겼다. 무슨 말을 해도 나에겐 개그맨처럼 웃겼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눈물을 흘리면서 웃었다. 그 때 친구들은 나에게 이 곳이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대학교가서는 소위 시쳇말로 “포텐이 터졌다”. 공교육의 폐쇄적인 시스템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그렇기에 내가 지금까지 큰 고통을 받아왔구나 싶을 정도의 새로운 세계였다. 대학교에선 예전과 다른 각도로 나를 바라봐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 까지는 고인물처럼 매일 같은, 폐쇄적인 환경에서 머물러야만 했었는데 여기서는 내가 친구들을 머물고 내가 자낼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나는 매일 같이 웃었고, 내 주위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가 선택한 환경, 사람들이기에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려 하고 있다.
그 힘들었던 시절 내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었다면, 지금의 이 행복은 절대 맛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최고로 아팠던 시간을 꿋꿋이 넘기고 주체적인 인간이 된 내가 자랑스럽다.
지금 교우관계로 고민하고 힘든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너의 고통이 너무나도 큰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질지라도 그 고통을 조금 더 참아라.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과 기회가 있고, 니가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변화는 곧 찾아올 것이더.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 것인지는 너에게 달려있다. 너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서 내가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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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웹툰의 광애독자이다. 다음,네이버,올레,레진까지. 하루 일과 중 웹툰이 빠지면 섭섭한 사람이다. 요즘 웹툰은 장르가 워낙 다양해서 볼거리가 너무 많다. 그 중에 연인들의 심리, 19금 이상의 심리를 매우 잘 나타낸 웹툰이 있는데 전자는 여자들의 뒷담화, 후자는 독신으로 살겠다이다. 독신으로 살겠다에 진짜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건 다음에 적는 걸로 하고….

위의 여주가 너무 나같아서 사진을 올려본다. (웹툰 여자들의 뒷담화) 솔직하다는 이름아래 조금의 불만이라도 있으면 가차없이 말해버리고, 남자친구는 참다참다가 씩씩거리면서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자기만 공격하는데 너는 잘못없는 거 같냐고. 자기는 조금 기분나빠도 그냥 넘어가려 하는데 나는 그걸 못참고 맨날 말해버린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전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그 때 너무 미안했었다. 나는 맨날 그가 화내면, 그럼 내가 가진 불만을 속으로 삭혀야겠냐고, 보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 말하는 건데 그게 그렇게 불만이냐고 그랬었다.

서로 도를 넘어선 안되겠지만, 적당한 대화는 필요한 법. 그 적당함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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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의 놀라운 세계 – 2의 2승, 2의 E승, E의 2승, E의 E승 구별하기
http://blog.naver.com/nscome/10144985646 이 블로그에 잘 설명되어 있다.

This is a true story of my friend, who found somebody’s lost family in Korea. it is written in English, 한국어 and Deutsch.

이 이야기는 제 친구 Jessica Newbigging이 6.25때 한국에 파병된 어떤 미군의 흔적을 부산 UN묘지에서 찾아, 미국에 있는 그의 가족에게 잃어버린 그들의 가족을 찾아준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얼마전이 Remembrance day라고 전사자 추도일이었습니다. ( 참고 : ko.wikipedia.org/wiki/영령_기념일 ) 바로 그날에, 그 옛날 한국을 위해 싸워줬던, 60년 전 연락이 끊겨버린 참전병의 소식을 그 가족이 알게 되어 무척이나 기뻐했던 감동적인 이야기라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여러가지 언어로 올려봅니다. 원문은 영어로 Jessica가 facebook에 올렸던 내용입니다.

* Enlgish Version ( 원문- the Original version , written by Jessica )

A few years ago, before I moved to Korea, I had to sell all of my furniture. An elderly man came by to buy an old exercise machine. He was a lovely man and we kept in touch via email over the next couple of years. He recently told me a heartbreaking story: when he was a child, a neighbor used to come and play with him. The man was a few years older than him but wonderful nonetheless. The man was suddenly shipped off to war and no one saw him again. His family never knew what happened to him and had never had any true closure. The older man I had been in touch with, knew the soldier was probably buried somewhere in Busan if anywhere, and asked me to search for his headstone. After visiting the UN cemetery in Busan and taking a few pictures of the cemetery as well as a headstone with a name very similar to that of the soldier, I sent an email apologizing for not being able to find the lost soldier. I woke up to an email this morning that had me smiling and crying at once. The headstone is the correct one, albeit slightly misspelled. The family is overjoyed and incredibly grateful – after 60 years, they have found their loved one. Although it was a small endeavor for me, I cannot imagine how they feel. Being a day ahead here, it also completely slipped my mind that I sent the photos on Remembrance Day.
To all those loved and lost, we thank you. ♥

* Korean Version

몇 년 전, 내가 한국으로 오기 전에 나는 내 모든 가구를 팔아야만 했다. 한 연세가 드신 분이 나의 오래된 운동기구를 사기 위해 방문하였다. 그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며 우리는 그 후 2-3년 동안 이메일을 통해 인연을 이어왔었다. 최근 그는 내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어릴 적 같이 어울려 지내던 이웃이 있었다. 그 이웃은 그보다 몇 살 더 많았지만, 좋은 친구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는 전쟁으로 차출되었고 아무도 그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의 가족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으며,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노인은 아마도 전쟁에 참여했던 이웃집 형이 부산 어딘가에 묻혀 있을거라 여기고 나에게 그의 묘비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하였다. 부산의 UN 묘지를 방문하여, 묘지의 사진을 찍고 그 사람과 이름이 비슷한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찾아서 그 사진도 찍었다. 허나 나는 그 사람을 찾을 수 없어서 유감이라는 말과 함께 이메일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노인으로부터 온 이메일을 보고 나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그 묘비는 철자에 있어 실수가 있었지만 그의 묘비가 맞았다. 그의 가족은 60년 만에 드디어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을 찾을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뻐하고 감사해하였다. 나에게 수고스러운 일이었지만, 나는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를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일이 생기기 하루 전, 내가 사진을 보냈던 그날이 정확히 전사자 추도일 – Remembrance Day : (특히 세계 1, 2차 대전) 전사자 추도일(11월 11일에 가장 가까운 일요일) – 이었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랑했고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잃은 모든 분들께, 우리는 감사합니다.

* German Version

Vor einigen Jahren, als ich dabei war nach Korea umzuziehen, habe ich alle meine Moebel verkauft. Ein aelterer Herr kam vorbei und kaufte mir ein altes Fitnessgeraet ab. Er war sehr nett und wir blieben die folgenden Jahre per E-Mail in Kontakt. Vor kurzem erzaehlte er mir eine herzzerreissende Geschichte: Als er ein Kind war, kam gelegentlich ein Nachbar vorbei und spielte mit ihm. Der Nachbar war zwar um einiges aelter, aber dennoch sehr liebenswuerdig. Ganz unerwartet wurde der Nachbar dann in den Krieg eingezogen und niemand sah ihn je wieder. Seine Familie hat nie wieder von ihm gehoert und wusste nicht, was ihm widerfahren war. Der aeltere Herr, mit dem ich in Kontakt war, vermutete, dass der Soldat irgendwo in Busan begraben liegen koennte und bat mich, nach seinem Grabstein zu suchen. Ich ging also zum UNO Friedhof in Busan und machte Fotos von dem Friedhof und einem Grabstein, auf dem ein Name geschrieben stand, der dem des Soldaten sehr aehnlich war. Ich schickte meinem Bekannten eine E-Mail und bat um Entschuldigung dafuer, den Soldaten nicht gefunden zu haben. Heute morgen dann erhielt ich eine E-Mail, die mich sowohl froehlich als auch traurig stimmte: Der Grabstein ist der richtige, wenngleich der Name fehlerhaft geschrieben ist. Die Familie ist uebergluecklich und wahnsinnig dankbar – nach 60 Jahren haben sie endlich ihren Lieben wiedergefunden. Obwohl mein Beitrag ja nur sehr gering war, kann ich mir nicht vorstellen, wie die Familie sich fuehlt. Da wir hier einen Tag voraus sind, war ich mir zudem gar nicht bewusst, dass ich die Fotos am Remembrance Day (Gedenktag in Laendern des Commonwealth fuer im Krieg gefallene Soldaten, Anm. d. Uebersetzers) geschickt hatte.
All ihr Lieben und Vermissten: Wir danken Euch!!

UN 묘지? – “The only one in the world, the UN Memorial Cemetery”
The UN Memorial Cemetery in South Korea is referred to as “the only one on the world” as it is the only case in which the UN sent troops to a troubled area and fallen foreign soldiers were buried and remain at rest there. A total of twenty-one countries, and 1,754,400 person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United Kingdom, Turkey, etc, sent troops to the Korean War under the UN banner. Every year, the families and acquaintances of the deceased visit the cemetery. Because South Korea has made this memorial park honoring those lost in the Korean War, visitors, family members, and countrymen recognize Korea as a loyal country.

[부산에만 있는 101가지] “세계에서 단 하나, UN기념공원”

유엔기념공원에 항상 ‘세계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까닭은 유엔이 유엔의 이름으로 세계분쟁지역에 군대를 파병한 유일한 사례가 한국전쟁이고, 그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인데요. 유엔군의 깃발 아래 한국전쟁에 파병한 나라는 총 21개국(미국, 영국, 터키 등), 파병자 수는 175만 4400명에 이릅니다.

매년 유가족들과 동료가 이곳을 찾아오는데요. 이들에게 한국은 자국민의 전사자를 위한 기념 공원을 만들어 추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리 있는 국가’로 인식되고 있답니다.

출처(Source): 부산광역시 공식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usanCity)